해병대 입대기, 멋지게 전역한 아들과의 추억
아들의 해병대 입대기
정말이지 역대급 추위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던
2020년 12월... 코로나로 온 지구는 패닉이었다.
전쟁과도 같은 혼돈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의무를 다해야 했다.
나의 아들은 12월 그 추운 혹한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입대를 하였다.
그런데 그곳이 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한 해병대란다.
나는 적잖이 놀랐고 그런 도전을 하는 아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
입대를 앞두고 아들은 여러 모습을 보였다.
덤덤했다가 먼가 심란해 보였다가 잠깐 동안은 초조해
보였다가 점차 담대해지는 등, 군에 가는 남자라면 겪는
어떠한 과정인 듯해 보였다.
그렇게 입대 날짜가 다가왔고 실감 나지 않던
나에게도 아들의 민머리는
가슴 먹먹한 눈물을 떨구게 했다.
'태어나 20여년을 함께 살았고 이렇게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는데 드디어 나의 아들이 군대를 가는구나…'
아~!
나에게도 입영열차를 타는 아들을 보는 날이 온 것이다.
입대날에 아들은 혼자 훈련단으로 떠났다.
코로나 여파로 함께 움직이는 위험을 생략하자며
혼자 가겠다고 이 어미의 배웅을 끝끝내 마다하였다.
우리는 집 부근 역사(기차역 건물)에서 기념사진 두 어장과 따뜻한 포옹(말없이 오래도 끌어안고 있었던..)으로 쿨하게 서로를 보내 주었다.
'잘 다녀올게요~어머니 너무 걱정 마요'
'아들~사랑한다 조심히 가'
늘 '잘 다녀와'...라는 인사를 하던 난데
조심히..가..라는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보내고 오는 차 안에서 조용히 흐르기 시작한
나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비어 있는 방 앞에 서니
눈물은 이내 울음으로 바뀌었다.
'그래.. 걱정 말라는 건 아들의 몫이고,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아들을 이리 애가 타게 걱정을 할까.. 그건 바로 이 어미의 몫인 거지' 하며 그렇게 맘 놓고 울어 버렸다.
얼마후 혼자 떠난 아들은 훈련단 앞에서
한통의 전화를 해왔다.
'어머니 저 이제 들어가요. 잘 다녀올게~'
'어~그래 아들 잘하고 와.. 사랑해~'
아들은 끝까지 씩씩했고 나는 아들 맘이
무거울까 눈물을 삼키며 씩씩한 척했다.
해병 아들 엄마의 일상
이후 아들의 소식을 들을 날 만을 기다리며
엄마인 나는 점차 해병대가 되어갔다.
매일 해병대 훈련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부 아닌 공부를 하며 아들의 훈련이
어떤 것인지 해병은 어떤 군인인지 알아갔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검색어는
그날 이후 온통 해병대였다.
지켜보던 딸아이가 말했다.
"오빠보다 엄마가 먼저 해병이 되겠어!"
그렇게 어느 날에는 팔각모 사나이 군가가
가슴에 뭉클함을 주어 따라 부르게 되었고
아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애타는 마음으로
하루가 열흘 같은 한 주를 보내고 있을 때,
해병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훈련병들의
1주 차 생활 모습이 사진으로 올라왔다.
★Tip : 훈련단 생활중 평균 100여 명 정도가 자의에
의한 중도포기, 혹은 내부 신체검사 및 건강검진 등에서
불합격 판정 등으로 퇴소 조치가 된다고 한다.
그럴 경우에는
전화가 올 수 있다고 하여 그것 또한 신경이 쓰였다.
눈을 씻고 아들을 찾아보겠다고 힘들던 차에
너무나 선명하게 식판을 들고 찍힌 아들의 사진!
순간 울컥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다행이다.. 밥은 먹는가 보다...'
그저 그 식판이 너무 반갑고 아들의 씩씩한
사진 한 장에 가슴 조이며 며칠을 잠을 설친
어미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잊지 못할 해병 아들과의 첫 통화
2주 차가 지난 주말에는 전화가 올 수 있다는 정보에
주말 내내 전화를 옆에 끼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전화가 이상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
왜 이리도 전화가 안 오는지
혹시 전화가 잘 못되어 아들 혼자 통화를
못한 건 아닌지 그럼 얼마나 그 마음이 힘들까..
노심초사하던 순간 아들의 전화가 울렸다.
"아~~ 그래 아들!! 엄마야~~..." 목이 메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애타게 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나는 소리쳤다.
"어머니~~ 들려요?"
아들은 인터넷 전화 여건과 주변 동기들의 통화소리를
뚫고 목소리를 전해왔다.
"어~아들! 잘 들려! 우리 아들 장하다.! 우리 아들 고마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나는
메이는 목으로 아들을 불렀고 이내 아들은,
"예... 어머니 저예요..."
아들은 울고 있었다.
태어나 어린 시절 말고는 자라는 동안
남자는 울지 않는다며 눈물이라곤 보이지 않던 아들이
잠시 동안 울컥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씩씩하게 이야길 해나갔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짧은 통화 허용 시간에 해야 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서로를 걱정하며
한동안 말없이 토닥이고 있었다.
해병으로 거듭 난 아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해병대 군생활은
엄마인 나에게 깊은 감동과 벅참을 선물했다.
나의 염려는 아들의 씩씩한 목소리와 사진 속
표정을 보며 점차 감사와 응원으로 바뀌어 갔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해병으로
아들은 멋지게 변화해 가고 있었다.
그는 멋진 해병으로
자랑스러운 이 나라의 빛나는 군인으로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나라 앞에 헌신하는
건전한 청춘으로
이 엄마에게 귀한 경험과 감동을 주었다.
해병대 엄마로 살아보는 경험은 특별하다.
우리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며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해왔지만 가장 감동인 감정을 느끼게
해준 아들의 해병대 입대기!!
마지막 극기주에는 그 추위에 잠도 덜 재우고
야외 비박에 먹을 것도 최소한으로 주어진다고 한다.
고갈된 체력을 정신력으로 이기며
해병대의 상징인 천자봉을 오르는 지옥의 행군까지..
그리고 마침내..
7주간의 험난한 훈련을 이겨내고
해병이라는 인정이 시작되는 빨간 명찰과 팔각모를
쓴 멋진 아들!!
수료식에는 코로나 여파로 참석이 불가하여
영상을 통해 보았지만
그 늠름한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현장에서 만났다면 눈물범벅이었을
수료식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두고두고 우리는 아들의 이야기로
자부심과 더불어 행복할 것이다.
무엇이 되어서 멋진 것이 아니라
그런 건전한 도전 자체로
아들의 존재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귀한 청춘들의 헌신이 있기에
이 나라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고
수많은 청춘들이 쌓아놓은 단단한 자주국방을
이렇게 나의 아들이 이어갈 수 있어서 너무나 대견하다.
수료식을 마친 아들에게 보낸 어미의 당부
'해병이 된 아들아
이 어미가 바라건대
부디 멋진 군인이 되거라!!
네가 걸어가는 그 길은
수많은 선임들이 걸어 간 길이요
또 많은 후임들이 걸어갈 길이니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그 자리에서
투철한 군인정신을 갖춘 해병으로 거듭나서
멋진 군생활로 좋은 선례를 보이는
군인이 되기를 당부한다.
아들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오늘도 이 엄마는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으니
귀한 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전하며
언제나 최고의 마음으로 응원한다.
멋진 아들 사랑한다.
필... 승!!!'